생활비 및 예산 산정
해외로 처음 이주할 때 현지에서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세계 도시마다 물가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느낌이나 추상적인 인터넷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간단한 검색과 약간의 시간 투자로 현실적인 생활비 수준을 계산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싱가포르와 미국으로 이주했던 제 경험을 기반으로 했고, 아래 방법으로 세계 어느 도시로 가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세금 계산
가처분 소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건 세금과 월세입니다. 세금은 지역마다 크게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뉴욕은 소득세가 매우 높고 텍사스는 소득세가 아예 없습니다. 구글에 “<지역 이름> Paycheck Calculator”라고 검색하면 여러 사이트가 나오는데, 그중 ADP라는 웹사이트를 사용하면 비교적 정확한 예상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New York Paycheck Calculator by ADP)
예를 들어 미혼의 뉴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연봉 $185,000(levels.fyi 기준 중위값) 받는다면 2주에 $4,820을 받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각종 보험료가 빠져있습니다. 또한 New York City에 살면 추가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둘을 합쳐 대략적으로 $600 더 차감해보겠습니다.(이 수치는 개인마다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2주 급여는 $4,220이 되고, 월급으로 환산하면 $9,143($4,220 * 26번 / 12달) 입니다.
월세 추정
다음은 월세를 계산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해서 나오는 “평균/중위 월세” 값은 현실과 차이가 큽니다. 경험상 싱가포르와 뉴욕 모두 실제 체감되는 월세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평균 수치가 훨씬 높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평균값을 보고 지레 겁먹기 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서 직접 매물을 검색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사이트로는 Zillow, 뉴욕은 StreetEasy가 있습니다. 이런 사이트를 통해 매물을 살펴보면 평균값보다 저렴하면서도 살기 좋은 곳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거 기준은 사람마다 정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월세 $4,000에 살면서도 좁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2,000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싱글이라면 룸메이트를 구해 같이 살면서 월세를 획기적으로 줄일수도 있습니다. 결국, 직접 매물을 찾아보면 인터넷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장 덩어리가 큰 세금과 월세를 차감한 뒤, 보다 현실적으로 생활비를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생활비나 월세를 초호화 수준으로 계산하고 지레 겁먹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실 이주 전에는 보수적으로 추정하되, 발품을 많이 팔수록 현지에서는 그보다 더 절약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과도한 걱정보다는 현실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산을 추정하면 이주 과정이 예측 가능해집니다.
신용점수 시스템
미국에서 신용점수(credit score)는 금융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신용카드 발급, 집 렌트, 자동차 할부 등 각종 대출의 실행 가능성과 이자율에 영향을 줍니다. 미국에 도착했다면 하루 빨리 신용점수를 쌓기 시작해야 합니다. 첫 거주지를 구할 때부터 신용점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없어서 힘들거든요.
신용점수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용점수 없이 첫 신용카드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담보형 신용카드(secured credit card)를 만들거나 직장인이라면 월급(direct deposit)을 받는 주거래 은행에서 가장 기본형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Chase 은행은 Checking Account를 만들고 월급을 여러번 받으면 $300 보너스도 지급하고, 혜택 좋은 Chase freedom 신용카드도 승인해주기 때문에 저는 미국에 오자마자 Chase 은행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신용점수 관리 팁
신용점수를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절대 연체하지 않고, 매달 청구된 금액을 전액 상환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할거라면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30일 이상 연체 기록은 7년 동안 남아 신용점수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카드 한도의 30%를 넘지 않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낮을수록 더 좋고요. 미국 와서 신용카드를 처음 만들면 한도가 낮을 수 있기 때문에, 결제일을 기다리지 말고 중간 중간 바로 갚으면서 사용률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용을 쌓은 기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맨 처음 열었던 신용카드는 절대 해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미국에서 생활할 계획이라면 신용점수 시스템에 대해 공부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용카드 활용
신용점수와 연관있으면서도 미국 경제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신용카드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신용카드를 써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미국은 신용카드 제도가 매우 고도화돼있어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개인화된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종류
신용카드는 크게 보면 (1) 포인트를 받을 것이냐 (2) 캐시백을 받을 것이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분이라면 포인트를, 지출을 줄이고 싶은 사람은 캐시백을 활용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1 포인트가 1 센트의 가치라고 보면 되는데, 이걸 항공사나 호텔사 포인트로 전환하면 최대 10배의 가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신용카드 유튜버들이 있는데 한 분을 추천합니다: John Liang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카드 하나는 Bilt라는 뉴욕 핀테크 스타트업의 신용카드입니다. 월세로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카드입니다. 그리고 Bilt 포인트는 Chase 포인트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 포인트로 인정받고 있어 활용처도 많습니다. 저는 월세로 모은 포인트로 에어프레미아 항공권을 구매해서 한국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신용카드 vs 체크카드
추가적으로, 미국에서 debit 카드(한국 명칭 ‘체크카드’)보다 신용카드를 더 써야하는 이유는 신용점수를 쌓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는 부정 사용이 발생했을 때 사용 금액에 대해 변제 의무가 없습니다. 저 역시 미국에 와서 두 차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즉시 신고하자 카드 재발급을 해줬고, 제가 쓰지 않은 금액을 갚지 않아도 됐습니다.
반면 debit 카드는 사용 즉시 계좌에서 현금이 빠져 나가므로 피해 복구에 시간이 걸리고 보호 범위도 제한적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debit 카드는 지갑에 넣고 다니지 말라는 조언이 있을 정도입니다.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재정 상황과 선호도에 따라 선택해야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차이가 분명 있으므로 이를 알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 보험
미국은 한국과 같은 공적 의료보험 제도 대신 대부분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의료보험이 종류가 많고 복잡합니다. 그리고 직장에 따라서도 선택의 폭과 질이 차이가 큽니다. 미국에 산지 3년이 넘어가도 아직 100%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당장 알아두면 좋을 기초적인 몇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들이 몇 개 있습니다.
Deductible: 보험을 적용받기 전까지 내가 병원에 직접 진료비로 지불해야되는 금액. $0에서 $8,000까지 다양. 보통 ‘낮다’고 부르는 수준은 $0~$1500, ‘높다’고 하는 수준은 $2000 이상.
Copay: 병원에 갈때마다 진료비로 내는 고정 금액. (보통 $10~$100)
Coinsurance: 청구서의 %로 내는 진료 금액. (보통 10%~30%)
Out-of-pocket Maximum: 1년에 deductible + copay/coinsurance로 내가 내는 병원비의 최대치. 그 이상 들어가는 병원비는 보험사가 100% 지급.
1. Deductible 낮은 EPO/PPO
보험의 종류를 크게 나누면 deductible이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Deductible이 낮으면 매달 내는 보험료(premium)가 비쌉니다. 대신 병원갈 때 내는 비용(copay)이 예측 가능합니다. 최소한 병원비 폭탄은 맞지 않을수 있습니다. 미국 올 때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가 병원비인데 이 보험에 가입하면 일단 안심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입했던 보험이 이 종류였고, 한국인들에게는 이게 심리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PO, PPO라고 불리는 보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2. Deductible 높은 HDHP + HSA
High Deductible Health Plan(HDHP)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 보험은 deductible이 높고 병원비도 coinsurance(진료비의 %)로 부담하는 대신, Health Savings Account(HSA)라고 불리는 계좌에 넣어둔 돈으로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습니다. 계좌에 넣어둔 돈은 주식, 펀드, 채권 등에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내 HSA에 일정 금액 넣어주는 복지가 있습니다. 매달 나가는 비싼 보험료 대신 저축하고 투자해서 10년, 20년 돈을 불린 다음에 노년의 병원비를 거기서 꺼내다 쓰면 장기적으로 이득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보통 이 보험에 가입한 분들은 모든 병원비를 자기부담하고 영수증을 챙겨뒀다가 수 년 또는 수 십 년 뒤에 HSA에서 꺼냅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 의료 보험을 가입할 때는 EPO/PPO 종류를 할지, HDHP 종류를 할지 우선적으로 결정이 필요하기에 이 둘의 차이를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마무리하며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은 사회 기반을 새롭게 배우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굉장히 벅찹니다. 2020년 이후 싱가포르와 뉴욕으로 두 번 이주하며 쌓은 정착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 이주한 후에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생활비, 기초 경제 활동, 건강 보험 등에 대해서 정리해봤습니다. 제 개인적인 기준에 따른 중요도로 선정했으며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포함시키지 않은 것 중에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들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수진님! 좋은 글 공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 보험 관련해서 보험을 먼저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특정한 지역의 특정 병원을 정한 다음에 해당 병원을 지원하는 보험을 가입하는 방법도 가능한지 궁금하네요! 올 9월에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데 임신 소식을 듣게 되어, 미국에서 하게 될 것 같아서 이 부분이 궁금하네요~